[영화] 이자벨 위페르가 만들어내는 엄마의 매력 <코파카바나> ┗느리게 or 한번더#

64회 칸 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칸 영화제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감독과 배우가 몇 명 있을텐데  여배우 중에서 한 명을 꼽자면 '이자벨 위페르'를 빼놓을 수 없을거다. 그녀의 영화를 대부분 보지 못했지만 소위 말하는 칸이나 베니스 같은 '영화제'에서나 볼 법한 영화들 속에서 그녀를 본 적이 몇 번 있다. 찾아보니 내가 본 그녀의 영화는 장 뤽 고다르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영화>, <열정>, 그리고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 <늑대의 시간> 정도.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연기는 <늑대의 시간>이었는데, 특유의 무표정과 산전수전 속에서도 지지 않는 단단한 어머니상은 내가 앞으로 '이자벨 위페르'하면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인물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극중 인물로서의 '어머니'이자 배우로서의 '이자벨 위페르'에 대한 유별난 인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전,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를 한 편 더 보게 되었다. 한번 제목을 듣는 것만으로는 외우기도 쉽지 않은 이국적인 말, 혹은 지역, <코파카바나>. 실제 딸과 함께 출연한 영화 <코파카바나>에서 이자벨 위페르는 또다시 엄마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전에 보았던 그런 엄마가 아니라 완전 다른 모습의 엄마였다. 나는 이 영화의 첫 장면을 조금 의심스럽게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화려한 아이 섀도우로 단장을 하는 이자벨 위페르- 어머니의 모습. 색깔의 충동으로 인해 또 다시 '생각 밖의' 엄마를 연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첫 장면이 불러 일으킨 기대감은 결과적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아무튼 이자벨 위페르가 나온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기대라는 것은 상술했던 영화들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예상 밖 서사의 충돌이 만들어 낸 희비극 속의 엄마'가 아니라 '그냥 엄마'의 모습으로 나온 그 의외성으로부터의 기대였다. 그냥 엄마 혹은 특별한 엄마의 이야기는, 아무튼 시작되고야 말았다.
과년한 딸을 두었음에도 여전히 철이 없고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고 있는 듯한 바부(이자벨 위페르)는 어느 날 딸로부터 얼마 안 있어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웬일, 그 결혼식에 자신은 참석할 수 없다고 한다. 시댁 식구들에게는 엄마가 브라질의 코파카바나에 있기 때문에 못 온다고 해놨다고 한다. 사실은 무책임하고 돌발 행동을 서슴없이 행하는 엄마의 부끄러운 모습 때문에 차마 결혼식에 부를 수 없던 딸이 거짓말을 한 것. 이에 엄마는 뒤통수를 맞은 듯한 표정으로 화를 참지 못하지만 사실 부정할 만한 사실은 아니었기에 딸의 결정에 순응한다. 그리고 바부는 이 같은 굴욕을 무릅쓰고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앞으로의 갈 길, 앞으로의 일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책임감 없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던 그때처럼, 맘에 안 드는 일을 3일만에 관두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한다'의 굳은 의지로 그녀는 일을 시작한다.

그로부터 떠난 길은 브라질의 코파카바나가 아닌 벨기에. 바부는 벨기에의 한 리조트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그녀는 콘도 파는 일을 시작하는데 여기서부터 바부의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 메인 카피에는 '달라도 너무 다른 엄마와 딸' 이라고 해서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전개, 그리고 오롯이 피어나는 (뻔한 결말에 이르는) 모녀간의 정이 이 영화의 그렇고 그런 엔딩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예고편조차도 딸과 엄마 사이의 갈등이 이 영화의 이야기인 듯, 그래서 마치 코파카바나라는 꿈의 섬에 두 모녀가 이르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행복이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벨기에서의 바부 이야기는 이 영화가 결코 그 노선을 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엄마 바부가 딸과의 관계 재정립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삶을 찾았다는 것이 아니라오로지 바부에 의한, 바부를 위한 영화라는 점이며 그것은 안타깝게도(?) 이 영화의 메인카피에서 딸이라는 글자를 괄호 치기로 읽어도 무방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파카바나>의 미덕은 바부라는 한 사람이 겪는 한 때의 일대기를 드라마틱한 전개로 그리면서 이것이 어머니의 드라마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최근에 나는 약간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인 영화 포스터(엄정화가 무려 요구르트를 파는 엄마로 나오는 모 작품)를 보면서, 익숙하고 뻔한 것이 오히려 더 기이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았다. 여자였던 엄마가 나이를 먹고 자식들의 엄마로서 살아가는 그 누군가의 삶을 측은지심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려 하는 것가족간의 갈등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화해, 이후 불 보듯 뻔한 감동은 결코 우리가 엄마(혹은 엄마의 역할을 하는 한 사람)를 들여다보기에 한편으로는 역설적으로 우리 생활에서 너무 동떨어져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와는 달리<코파카바나>의 바부는 엄마로서 당하게 된 굴욕 이후 침착하게 자신의 삶을 지속시키는 일상을 바부 다운 자유 분방함을 잃지 않은 채 보여준다콘도를 파는 그곳 벨기에에서 바부는 동료 직원들의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자신만이 갖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여 승진도 하고, 부랑자와 같은 친구들과도 거리낌 없이 친해진다즉 바부는 가족 혹은 세상과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삶의 방식을 굽어버리는 그런 가족 드라마 속의 바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바부의 삶을 유지하며 세상을 확장해 나가기에 이른다. 물론, 그 행위들의 결과는 모두 옳게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부랑자를 콘도에서 몰래 재운 혐의로 믿을만한 그 콘도 회사는 바부를 사직시키고 남자 친구와의 불평등했던 관계는, 결국 청산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파카바나>의 바부는 여전히 더 나아갈 곳을 향해 찾아간다. 그것은 바부의 미래이자 <코파카바나>가 지시하고 있는 엄마를 다룬 영화의 미덕이다. 그러니까 그곳은 이 영화의 제목대로의 코파카바나 그 곳이자, 이러한 엄마의 모습을 (인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하려 하는 딸을 만나 또 다른 가족이 이루어지는 결혼식의 그곳에 결국 도달하게 되는, 그 지점들이다.

바부는 그 모든 피날레를 춤으로 승화시킨다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바부는 그 춤의 잠재적인 정신을 자신의 철없음 혹은 자유로움으로 영화 내내 암시적으로 보여주다가 엔딩에 이르러 뜬금없는 브라질리언 춤으로 보여준다이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그것은 한편의 코미디인 것처럼 보인다. 딸의 결혼식에 나타난 친정 엄마가 우스꽝스러운 깃털 장식을 달고 마치 자신이 결혼식의 주인공마냥 춤을 추면서 나타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결혼식의 풍경은 코미디도 아니며 비웃음의 장면도 아니다이것은 오히려 바부가 만들어 움직여가고 있는 삶의 긍정적인 지속을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바부의 축하 공연(?)은 끝나고, 그녀는 동료 브라질리언들과 함께 다음 공연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그녀는 웃으며 떠난다이 영화는 마지막까지도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바부의 위험천만 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해 볼 만한 그녀의 미래를 보여준 것이기도 한 이 마지막 장면은 이자벨 위페르의 다른 영화들 만큼이나 인상 깊다. 바부 혹은 이자벨 위페르의 '엄마 영화'는 또 알 수 없는 그 어떤 방식으로 떠나갔다가 다시 나타날 것 같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영화의 메인 카피 때문에 오인된 엄마 영화로써 <코파카바나>가 홍보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이러한 종류의 감상 역시도 감동으로 여겨질 수는 있다그렇다면, 과연 이자벨 위페르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 영화를 이해하고 있을까. 다음주에 그녀가 내한한다고 한다이창동 감독과 함께한다는 그 씨네 토크, 어쩌면 이창동의 <밀양> <>가 관통하고 있는 엄마와 <코파카바나>의 엄마가 교접하는 지점이 토크에서 그 얼굴을 드러낼지도 모르겠다. 매우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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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닉네임 2011/05/23 14:43 # 답글

    이창동 감독과의 씨네토크라니 매우 기대됩니다. 이자벨 위페르는 여전히 아름답네요.^^
  • 춤추는곰♪ 2011/05/23 14:44 #

    네네! 저도 완전 기대하고 있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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